다카라즈카 공연에 다녀왔습니다 기분파 문화산책

저는 다카라즈카에 대해서 일반적인 상식 이상의 지식도 없고, 물론 관전한 적은 전혀 없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어지간한 공연은 1년전에 미리 예매를 해두어야 하고, 가격도 만만치 않다고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우리나라에서 열린 다카라즈카 공연은 많은 단체의 후원 덕에 저같은 사람에게도 갈 기회가 주어졌지요. 먼저 이번 공연이 한국에서 열릴 수 있도록 힘써주신 많은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이 다카라즈카는 공연 자체가 상당히 많은 예산이 들어가기 때문에 국내 유치도 쉽지 않았고, 설사 한다고 해도 채산을 맞추기가 어려워 해방 이후 지금까지 단 한번도 한국에서 공연한 적이 없었지요. 물론 일본 문화에 대한 국내의 뿌리깊은 반감도 어느 정도 작용했을 겁니다. 다카라즈카가 사실 일본의 '전통' 극은 아니지만 일본 '만의' 독특한 장르임에는 분명하니까요. 그나마 한국과 일본이 조금이라도 사이좋게 지냈으면 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아니었으면 이번 공연의 성사는 불가능했으리라 봅니다.

먼저 공연장인 경희대학교 평화의 전당을 갔는데,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경희대가 좀 가파릅니다. 거기다가 택시도 도중에서 끊더군요. 그런데 어떤 택시는 그냥 올려보내주는 것 같았습니다. 타고 있는 사람보고 차별하는 듯 하더군요. 더구나 위쪽으로 올라가니 버스가 잔뜩 정차해 있었습니다. 일본에서 온 단체관람객인 모양인데 힘들게 걸어올라가서 본 광경이 그거라 약간 찜찜하더군요.

사실 이번 공연에는 일본인 관람객도 많았습니다. 그것도 당연한게, 일본에서 다카라즈카 표를 예매해서 보는 것보다도 이렇게 한국에 와서 보는 쪽이 훨씬 '쉽기' 때문입니다. 일종의 아이러니라고 할까요. 거기다가 한국 관객들도 다카라즈카에 대한 인식이 그리 없어서인지(일반인들은 아예 뭔지 모르는 사람들도 많으니까요), 거기다가 평일 저녁 시간대다보니 예상만큼 꽉꽉 들어차지는 않더군요.

뭐, 그 '예상'이라는 것도 어디까지나 일본 기준이다보니, 한국의 어지간한 공연 기준으로 생각하면 충분히 많은 사람이 오지 않았나 싶습니다. 참고로 R석 12만원, S석 8만원, A석 5만원이었죠. 1층의 R석 같은 경우는 가끔 객석으로 내려오는 배우들의 춤과 연기를 코앞에서 감상할 수도 있지만, 제가 있던 중층 S석은 아무래도 그건 좀 무리였죠... 그래도 충분히 좋은 구경 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1부 공연은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진 '베르사이유의 장미', 2부는 '소울 오브 시바 - 꿈의 슈즈를 신은 춤의 신' 이었습니다. 그 중 베르사이유의 장미는 페르젠을 중심으로 해서 재구성된 스토리더군요. 듣자하니 다카라즈카판 베르사이유의 장미에는 페르젠과 오스칼이 각각 주인공으로 나오는 두 버전이 있다고 합니다. 하긴, 워낙 원작이 방대하다보니 그걸 무대극으로 꾸미기 위해서는 어느 한 쪽에 초점을 맞춰야 하겠죠.

느낌은, 그야말로 만화적이었다고나 할까요. 인물들의 분장, 복장, 그리고 무대장치와 음악에 이르기까지 만화다운 화려한 색상과 70년대의 애니메이션을 생각나게 하는 음악, 그리고 이런 분위기를 잘 살리고 있는 배우들의 대사와 춤이 뚜렷한 방향성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다만 한국 공연이 처음이라 자막 싱크가 잘 안맞는 부분이 있었다는 것이 옥의 티로군요.

그리고 사실 다카라즈카의 연극 파트는 처음 보는 사람에게는 좀 지루한 면도 있는지라, 조시는 분들의 모습도 여기저기서 보이긴 했습니다;;; 아무래도 원작 스토리를 어느 정도 전달해야 한다는 부분이 있어서 그런지, 뮤지컬 형식 치고는 대사도 많고, 애초부터 압축판이다 보니 원작 만화를 잘 모르는 사람에게는 뜬금없는 내용도 많지요. 애니메이션이라도 본 사람이라면 별 문제는 없겠습니다만.

반면 2부인 소울 오브 시바는 전통적인 뮤지컬 형식이었습니다. 스토리는 간단합니다. 미국의 가난한 소년 레이크는 사실 시바 신의 화신으로 태어난 소울 오브 시바였는데, 우연히 프로듀서에게 발탁되어 뛰어난 춤의 재능을 보여주고 춤의 힘으로 마피아까지 물리치지만, 여배우 화이트와 가까와지면서 질투를 느낀 프로듀서의 음모로 다리를 못쓰게 되는데, 그때 시바신이 나타나 레이크를 진정한 소울 오브 시바로 각성시킨다...는 내용입니다.

사실 이번 한국 공연의 진짜 진수는 이 2부였다고 생각합니다. 한국 관객을 의식해서 곳곳에 한국어 대사가 들어갔고, 우리나라 노래인 '보고싶다'를 한국어로 부르고, 역시 우리나라 곡인 '만남'을 어레인지한 댄스곡이 흐르는 등 많은 서비스가 있었습니다. 관객들의 반응도 솔직히 1부보다는 훨씬 좋았고, 일본 관객들도 일본에서는 결코 볼 수 없는 풍경에 나름대로 감동을 받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피날레에서는 한국어로 관객들에게 인사까지 했는데, 우리나라 공연이 단 3회뿐이고 앞으로도 한국 공연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거의 없는 상황에서 이렇게 많은 부분에 신경을 써준 것이 고마웠습니다. 더구나 이번 공연 자체가 채산성을 거의 무시한, 진짜 문화 이벤트라는 점을 생각하면 더욱 감동받을만 했습니다. 사실 마지막 인사 대사를 약간 까먹기도 했지만, 그건 그것대로 충분히 귀여웠습니다;;;

재미 자체에 있어서는 함께 가셨던 일행의 의견이 좀 엇갈렸지만, 그래도 '좋은 경험' 했다는 점에는 다들 동의하는 것 같았습니다. 저도 일본 대중문화를 연구하는 사람으로서 꼭 한 번은 보고 싶었던지라 결과적으로는 충분히 만족스러웠습니다. 단지 내려가는 길은 좀 고달팠군요. 경희대 주변이 워낙 혼잡해서 걸어서 역까지 갔는데, 거기다가 전철을 잘 못타서 아주 늦게야 집에 들어왔습니다.

덕분에 오늘 아침 '장금이의 꿈' 3화는 못봤습니다;;; 눈을 뜨니까 11시더군요. 어쩔 수 없이 재방송을 봐야;;;

여담으로, 디자이너 '앙드레' 김씨도 관람을 하러 오셨는데, 사람들이 알아보고 몰려들자 일일이 인사도 해주시고 같이 사진도 찍느라 공연 시작 직전에야 겨우 입장하셨더군요. 다들 매너 좋다고 칭찬이 자자했습니다. 나중에 자리 보니까 R석 제일 앞자리에 계시더군요.

written by 백금기사(lgaim.egloos.com)

덧글

  • 케로로 중사[대역] 2005/11/12 11:48 # 삭제

    어떤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포스팅을 읽어보니 캐나다에는 괜히 왔나라는 생각이 문뜩 듭니다...
  • 나른한오후 2005/11/12 11:52 #

    전 비싸서 포기입니다..ㅜ.ㅜ 보고싶었는데 결국 쫑이로군요...;;
  • 크라켄 2005/11/12 12:12 #

    이전부터 타카라즈카에 관심도 있는 편이라 보고 싶었는데
    언제 한다-는건 알고 있었거늘 이번 금토일이라는건 오늘 새벽에 알았지 뭡니까-_-
    (사실 베르사유의 장미는 전혀 모른다는게 문제긴 하지요)

    사실 그동안 그쪽 교류가 거의 없다시피 했죠
    앞으로 점점 그 영역을 넓혀가면 기회도 많이 생길거라 봅니다
  • LINK 2005/11/12 12:15 #

    @@;;; 저랑 같은 공간에 계셨군요. 전 상당히 즐겁게 봤습니다. 만화에 끼친(그리고 요새는 서로 왔다갔다 할 것 같더군요) 영향이 장난이 아닐 거 같더군요.... 무대에 재현한 만화책의 한장면 한장면들이라니.^^;;;;
  • 제리스 2005/11/12 12:21 #

    저도 비싸서 포기했답니다. 좋은 구경을 하셨군요 ㅠ_ㅠ;
  • 雪猫 2005/11/12 12:36 #

    저도 어젯밤에 보고왔답니다.ㅇ_ㅇb
    생각보다 베르사이유의 장미가 평탄했다는 느낌이지만. 분위기도 그렇고 첫 공연치곤 꽤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대관장소라던지에 문제도 좀 있었고; 사소한 실수같은게 좀 눈에 띄긴 했지만. 한국 팬들에 대한 서비스도 너무 좋았고. 에에. 좋았어요.
    백금님도 어제 저녁 즐겁게 보신것 같아 다행이네요^^

    ps! 트랙백 보내겠습니다.ㅇ_ㅇ/
  • 안모군 2005/11/12 13:32 #

    다카라즈카라... 정말 이름만 들어본 건데, 놓친게 아쉽군요.
  • 우림관 2005/11/12 14:54 #

    워낙 NHK에서 틀어주고 그래서 한번 봐야겠다는 생각이었는데
    비싸서 포기했지요

    근데 앙드레김선생님이랑 다카라즈카, 상당히 어울리는 조합이라는 생각이 딱 들었습니다.

  • 가브씨 2005/11/12 22:43 #

    BS를 볼 수 없게 된 후로 한번도 본 적이 없네요- 아직도 토욜낮에 하려나..
  • 마아사 2005/11/13 10:05 #

    서울에서 떨어져있으니 이런 문화적 혜택에서 점점 멀어지는 느낌이군요. 포스트를 읽으니 꽤 멋졌을 것 같아요. 앙드레 김씨 이야기를 들으니 저분이 저 무대에 섞였다면 멋졌을지도...라는 잡상이 떠올랐네요(하지만, 다카라즈카는 전부 여성이니 불가능하겠지만)
  • 리드 2005/11/13 20:21 #

    저도 정말 가 보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학기중이라서 못 갔지요. 다카라즈카는 정말 일본에서도 보기 힘듭니다(NHK 같은 데서 틀어주는 건 자주 보지만).
  • THX1138 2005/11/13 22:01 #

    NHK를 보면 종종 해주더군요 볼때마다 유치하다와 멋있다로 나뉘었어요(멋있다는 베르사이유의 장미에서 페르젠역을 한 여자분을 보고였죠) 친구하고 가고 싶었는데 뭐 그리 비싼지 포기했습니다.
※ 이 포스트는 더 이상 덧글을 남길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