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로봇 연구서설 - 엘드란 시리즈 편 -

* 학교는 우리들의 비밀기지 - 이것이야말로 어린이들의 꿈! -

리얼로봇 전성기의 한편에서 기록적인 히트를 기록했던 밀리터리 동물로봇 완구 시리즈인 ‘조이드’가 아동 취향노선으로 변모하는 과정에서 보여준 시행착오는 결과적으로 시리즈 종결이라는 엄청난 결과를 가지고 왔다. 그 직후, 토미는 ‘조이드’를 대신할 새로운 간판상품의 개발에 부심하게 되는데, 한때는 ‘조이드’의 흐름을 계승한 ‘Z 나이트’라는 새로운 인간형 로봇 시리즈로 승부를 내려고도 하였으나 OVA 제1화가 제작된 시점에서 ‘Z 나이트’는 실질적으로 실패한 기획으로 낙인찍히고 말았다.

그리하여 토미는 다카라의 ‘용자 엑스카이저’의 히트를 벤치마킹한 끝에, ‘엑스카이저’를 제작한 선라이즈와 손잡고 보다 어린이들에게 친숙하게 접근할 수 있는 거대로봇 작품 제작에 뛰어들게 되는데, 그 결과 1991년부터 방영이 개시된 작품이 바로 90년대 전반의 최고 명작 로봇 애니메이션이라고 일컬어지는 ‘절대무적 라이징오’였다.

이 라이징오가 그렇게까지 인기를 끌 수 있었던 비결은 바로 ‘어린이들이 직접 조종하는 거대로봇’이라는 개념이었는데, 스스로의 의지를 가지고 어린이 주인공과 ‘친구’로서의 관계를 맺고 있던 ‘와타루’나 ‘엑스카이저’의 주역 로봇들과는 달리, 완전히 주인공들의 손에 의해 조종되는 거대로봇이라는 발상은 어린이들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생각해 보았을 꿈이었겠지만, 실제로 그러한 꿈을 그대로 구현한 거대로봇 애니메이션은 지금까지 등장하지 않았던 것이다.

물론 그러한 예가 이전에도 완전히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거대로봇의 시조인 ‘철인 28호'나 마징가 직전의 작품인 ‘아스트로 강가’는 시청자와 같은 또래의 어린이들이 주인공으로서 악과 싸우는 작품이었고, 이후의 ‘그레이트 마징가’에서도 비록 주인공은 아니지만 ‘로봇 주니어’라고 하는, 시청자들과 같은 또래인 가부토 시로가 탑승하여 싸우는 거대로봇이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어느새 리얼로봇의 전성기를 지나면서, 거대로봇이라는 장르는 그것이 슈퍼로봇이든, 리얼로봇이든 간에 어린이의 눈높이와는 점점 멀어진 특정 계층만을 위한 컬트적 장르로 전락해 버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상황을 만들어버린 것은 다름아닌 어린 시절 ‘철인’이나 ‘로봇 주니어’의 활약을 보면서 꿈을 키우던 어린이들이었고, 자신들이 품어왔던 꿈을 이미 어른이 되어버린 자신들만이 계속 독점하고 있었던 당시의 크리에이터들 사이에서는 서서히 반성의 기운이 생겨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만들어진 이 ‘라이징오’는 마찬가지로 어린이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했던 ‘와타루’나 ‘엑스카이저’와는 또 다르게, 자신들이 어린 시절에 가지고 있었고, 또한 지금의 어린이들이 꾸어주었으면 하는 ‘꿈’을 철저하게 영상으로 옮기는 점에 가장 큰 주안점을 두었다. 어린이들에게 있어서 가장 친숙한 공간인 ‘학교’를 로봇의 발진 기지로 만들고, 교실이 곧 로봇의 지휘통제실이며, 반 친구들 하나하나가 로봇을 움직이는데 있어서 없어서는 안될 지휘관이며, 오퍼레이터이며, 또 연구원으로서 대활약하는 이 신나는 슈퍼로봇의 활약은 어린이들의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은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고연령층의 시청자들에게도 자신들의 어린시절 꿈을 다시 되돌아볼 수 있게 만드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이 ‘라이징오’는 그 연출뿐만이 아니라 주역 로봇의 디자인이나 능력에 있어서도 고전파 슈퍼로봇의 가장 기본적인 기호들을 집약시키고 있는데, 인간형 로봇을 중심으로 사자형 로봇과 불사조형 로봇이 합체하여 사무라이 투구와 두툼한 가슴장식, 그리고 커다란 날개를 가진 거대로봇으로 변형하는 모습은, 예전의 슈퍼로봇을 좋아했던 어린이들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공책에 그려보았을 ‘나만의 로봇’의 최대공약수를 그대로 형상화시킨 무난한 형상이었고, 이는 예전의 팬들이 갖고 있었던 ‘슈퍼로봇’에 대한 공동환상적 요소를 정확히 짚어내며 고연령층의 매니아에게도 매우 높은 평가를 얻을 수 있었던 또 하나의 매력이 되기도 하였다.

그러면서도 이 작품은,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어린이들이 무엇을 생각하며 무엇을 고민하는지의 현실적인 문제를 따뜻한 시각에서 그려냄으로써 어디까지나 어린이들의 ‘현실’ 위에서 이야기를 진행시켜나가는 자세를 보였으며, ‘라이징오’를 조종하는 3명 만이 아니라, 지구방위의 사명을 맡은 18명의 어린이 전부를 주인공으로 삼은 구성은 ‘기동전사 건담’ 등의 리얼로봇 작품들 이상으로 당시의 시청자들이 직면한 현실적인 인간관계의 문제나, 그 극복방법에 대한 해답을 구체적으로 제시해 주었다.

그리고, 악역들의 묘사에 있어서도 어린이들의 상대로서는 딱 어울리는 멍청한 악당들을 내세워 매번 유쾌한 작전들을 보여줌으로써 어린이들도 가벼운 마음으로 시청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주었고, ‘엑스카이저’를 모방한 중반의 주역로봇 강화극에 있어서는 적 측에서도 아군과 마찬가지로 강화합체 능력을 가진 로봇들이 등장하여 이후의 싸움을 보다 복잡하고도 흥미진진한 양상으로 만들어 주었다. 또한, 종반에 이르러 진정한 악의 원흉이 등장한 이후에는, 지금까지 미운 정 고운 정 다 들었던 악역들마저 어린이들의 편에 서서 함께 싸우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처음부터 끝까지 어린이들의 입장을 배려한 유쾌한 작풍을 고수하고 있다.

결국 평단과 팬들의 대 호평 속에 막을 내린 ‘절대무적 라이징오’는 그 인기의 여파를 업어 OVA로 속편이 제작되는 등 여전히 변치 않는 인기를 자랑하였는데, 토미 측은 그 여세를 몰아 ‘절대무적 라이징오’의 후속으로 ‘원기폭발 간바루가’를 제작. ‘용자 시리즈’에 대항하는 ‘엘드란 시리즈’로서의 본격적인 전개를 개시한다.

이 ‘간바루가’는 전작의 ‘학교’와는 달리, 골목대장들을 중심으로 한 ‘동네’라는 커뮤니티의 묘사에 주안점을 두고 만들어졌고, 3명의 주인공들을 가면의 변신 히어로로 설정함으로써, 전작과는 또 다른 관점에서 어린이들의 꿈을 그려내려고 시도하였다.

하지만 보다 어린이들에게 가깝게 다가가고자 했던 스탭의 의도는 ‘라이징오’를 통해 끌어들였던 고연령층 시청자들을 다른 작품에 빼앗기는 결과를 낳고 말았으며, 반다이나 다카라에 비해서 거대로봇 완구 마케팅의 노하우가 부족했던 토미의 잇따른 실책도 결과적으로는 ‘간바루가’의 몰락을 부추기는 결과가 되고 말았다.

충분한 변신합체 로봇의 개발 노하우가 완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무리하게 복잡한 변형을 시도한 ‘간바루가’의 완구는 그 뒤떨어지는 완성도로 인해 소비자는 물론 일선 완구점 측에서까지 적지 않은 불평을 받았으며, 주역로봇이 2중, 3중으로 강화되어가는 마케팅 전략도, 이미 충분한 검증을 거쳐 정착되어 있던 전대 시리즈나 용자 시리즈의 마케팅 패턴에 압도된 결과, 최종적으로는 대량의 재고만을 발생시키는 최악의 사태로 이어지고 말았다.

애니메이션 자체는 충분한 완성도를 가지고 있더라도, 스폰서 측의 전략이 잘못되었다면 작품 자체의 생명력이 위험해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토미와 선라이즈는, ‘간바루가’를 이어서 만들어진 ‘열혈최강 고우자우라’에 있어서 각자의 히든 카드를 사용하게 된다. 선라이즈 측은 ‘고우자우라’의 설정을 ‘라이징오’와 마찬가지로 다시 학교로 되돌리면서, 이번에는 학교 자체가 변형하여 한 반 전체가 탑승해서 싸우는 보다 대담한 연출을 보여주었고, 토미 측은 ‘조이드’ 시리즈로 갈고 닦은 노하우를 충분히 활용할 수 있는 공룡 모티브의 로봇을 전면에 내세워 재기의 발판을 마련하고자 했다.

하지만, 유쾌한 분위기의 ‘라이징오’에 비해 시리어스한 분위기가 압도적으로 강했던 ‘고우자우라’의 드라마와, 이미 유행이 지나버린 ‘공룡’이라는 모티브는 어린이들에게 그다지 먹혀들지 않았고, 고우자우라의 완구 역시 디자인은 그렇다 치더라도 합체과정에서 대량의 부품이 남아버리는 등, 완구로서의 완성도에 있어서는 치명적인 문제를 안고 있었다. 그리하여 결국 이 ‘엘드란 시리즈’는 일부에서는 여전히 높은 지지를 얻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는 제1작 ‘라이징오’의 후광만을 업은 실패한 시리즈라는 오명과 함께 쓸쓸히 종료를 맞고 말았다.

written by 백금기사(lgaim.egloos.com)

by 백금기사 | 2006/05/24 12:20 | 거대로봇 연구서설 | 트랙백 | 덧글(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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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ROBO at 2006/05/24 14:11
...엘드란 시리즈 중 라이징오가 첫번째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잠시 놀랐었습니다. 제일 세련된 작품이 첫작품이었다는 것이...
Commented by 로키 at 2006/05/24 17:00
첫 작품은 좋았으나 두번째부터 날로 먹으려 든 셈이군요. 날방의 위험성을 잘 보여주는 건가?
Commented by 삼총사 at 2006/05/24 18:13
그래서 4기가 제작되지 못했던 거군요 =ㅅ=;;
Commented by 이리아부친 at 2006/05/24 18:29
우리나라던 일본이건 우리학교에 있을지도 모른다고 한번은 생각해본 그 로봇이군요+_+!
이후 시리즈가 그정도로까지 참패로 이어질줄은 전혀 생각못했습니다. 다이테이오는 그야말로 흑역사로 변해버렸고...ㅠ_ㅠ 뭔가 기묘하군요
Commented by 강설 at 2006/05/24 18:34
완전승리 다이테이오는 영원히 볼수없는것일까요.
Commented by 케로로 중사[대역] at 2006/05/24 21:48
어렸을때 진짜 재미있게 봤는대 말입니다...
Commented by 에프킬러 at 2006/05/25 00:28
다이테이오는 프로모션 필름이나 코믹스로밖에 볼 수가 없습니다..

그건 그렇고, 엘드란.. 이 놈이 제일 나쁜 놈이더군요. 다이테이오 초반에 적의 공격으로 봉인당했다가 시리즈 후반에 어린이들이 퍼펙트 다이테이오 타고 구해줬건만 다이테이오 마지막화에서 라이징오, 간바루가, 고자우라, 다이테이오 다 갖고 튐..
Commented by 아리 at 2006/05/25 03:40
로보님//제가 알기론 원기폭발 간바루가가 제일 첫 작품으로 알고 있는데 아닌가요
Commented by 백금기사 at 2006/05/25 07:29
아리님/ 그럼 어떻게 간바루가에 라이징오가 나올 수 있을까요?
Commented by 열혈 at 2006/05/25 09:41
라이징오라.... 컨셉이나 작화같은건 괜찮았던거 같은데 주인공 녀석이 개인적으로 싫어하는 건방진 초딩... 이라서 맘에 안들었던 작품이군요...
Commented by 강설 at 2006/05/26 00:06
간바루가에 라이징오 나온 에피소드 기억나네요,
옆동네 가보니 라이징오가 싸우고있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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