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로봇 연구서설 - 자이언트 로보 편 - 로스트 카테고리 (1)

* 요코야마 월드 대폭발 - '진짜' 거대로봇의 부활 -

'자이언트 로보' 라는 작품 자체는, 흔히 알려진 것과는 달리 애초부터 요코야마 미츠테루의 순수한 창작이 아닌, 츠부라야의 '울트라 세븐'을 의식한 도에이의 기획에 의해 탄생된 캐릭터이다. 이 작품에서의 요코야마의 역할은 '철인 28호'의 원작자로서의 명성을 빌려주었다는 것과, 몇 편의 에피소드를 무성의하게 그려준 것이 거의 전부라 할 수 있었고, 따라서 요코야마 본인은 죽을 때까지 이 작품의 완전한 단행본화를 거부하였다.

따라서 진정한 '자이언트 로보'의 원전이라면 역시 도에이가 제작한 특촬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작품은 당시의 명작이었던 '울트라 세븐'이나 '가면의 닌자 아카카게'등의 특촬 작품과 비교하여 결코 빼어난 작품이라고는 말하기 어려웠지만, 평범한 어린이가 거대로봇을 조종해서 악과 싸운다는 기본 설정이 우선 어린 시청자들에게 공감을 얻어낸데다가, 이후 도에이 작품의 전매특허가 되는 개성적인 악역들의 명연기 덕을 본 것도 있어서, 방영 당시에는 그럭저럭 괜찮은 인기를 기록하였다.

또한, 총 26화로 끝난 이 특촬판 자이언트 로보는 방학 시즌의 편집방영에 적합하다는 방송국의 판단에 의해 거의 매 방학시즌마다 재방송되었기 때문에, 당시의 어린이 세대들에게는 작품성과는 관계없이 기억 속에 가장 선명하게 남은 작품이기도 하였다. 그리고 그것은 이 작품을 애니메이션으로 만든 감독인 이마가와 야스히로에게 있어서도 마찬가지였다.

황당무계한 요리물 '미스터 아짓코'로 인기를 얻은 이마가와 감독은, 시청자들의 예상을 뒤엎는 기상천외한 연출을 연발하며 애니메이션의 특성을 최대한으로 활용할 줄 아는 '연출의 마술사'라는 평판을 가지고 있었다. 그의 연출에서 볼 수 있는 가장 큰 특징이라면 역시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분방함에 있다고 볼 수 있는데, 이러한 그의 개성은 이 '자이언트 로보'의 애니메이션화에 있어서도 선명하게 드러났다.

그는 추억의 작품 '자이언트 로보'를 애니메이션화 하면서, 애초부터 그 작품 자체만으로는 그다지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들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하여 그는 이 '자이언트 로보'라는 작품을 하나의 그릇으로 삼고, 그 속에 요코아먀 미츠테루의 다른 작품들을 해체, 통합, 재구성하여 담아내는 작업에 착수하였다. 그리하여 결국 원조 자이언트 로보에서 남은 것은, 로봇과 주인공의 이름과 최소한의 모티브, 그리고 적 BF 단의 이름 정도였다.

실제로 이 작품은 요코야마의 대표작 '수호전'이나 '삼국지'를 비롯해서, '마즈', '철인 28호', '마법사 사리'(국내명 요술공주 샐리), '가면의 닌자 아카카게' 등의 수많은 작품들의 캐릭터와 배경 스토리가 원작과는 다른 모습으로 삽입되어 있지만, 감독은 작품의 이해를 위해서 그러한 원작들의 배경지식을 거의 요구하지 않는다. 그는 단지 이들 캐릭터의 매력을 '자이언트 로보'라는 자신의 작품 속에서 다시한번 보여주고 싶었을 뿐이고, 가능하면 이 작품이 시청자들을 진짜 '요코야마 월드'로 이끄는 관문이 되기를 원했을 뿐이다.

역시 이 작품의 진짜 매력은, 연극과 영화, 애니메이션의 장점을 하나로 합쳤으면서도 결과적으로 이들 모두를 능가했다고 할 수 있는 이마가와 감독 특유의 연출에 있는데, 만화적 상상력으로 가득찬 캐릭터들이 주고받는 연극적인 대사는 원래대로라면 무대극에 더 어울릴만큼 과장되고 극적인 회화체이지만, 그러한 대화가 오가는 배경은 실사 영화 이상으로 광대하고 입체적인 공간이었고, 그 모든 것들이 담겨있는 세계는 결국 '애니메이션' 속에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그 속에서 펼쳐지는 요코야마 캐릭터들끼리의 뜨거운 대결은 정통파 중국 무협을 연상시키는 장대한 양식미를 펼쳐내었고, 그 곁에서는 태산보다도 거대한 몸체와 지축을 뒤흔드는 괴력을 가진 '원조' 거대로봇들이 굉음을 내며 격돌한다. 원래는 리얼로봇 계열의 거장이었던 코바야시 마코토가 디자인한 애니메이션판의 자이언트 로보는, 예전의 실사판 자이언트 로보 이상의 중량감과 카리스마를 자랑하며 '마징가' 이후의 모든 슈퍼로봇과, '건담' 이후의 모든 리얼로봇을 능가하는 압도적인 존재감을 과시하였고, 그 로보의 얼굴에 매달려 있는 주인공 다이사쿠 소년의 모습은, 마징가 시리즈 이후로 거의 모든 사람들이 잊어버리고 있었던 '진짜' 거대로봇의 '느낌'을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되살려내었다.

하지만 이 작품의 강렬한 캐릭터들은 이런 '진짜' 거대로봇의 존재감 앞에서도 결코 움츠러드는 일이 없었고, 거대로봇들 역시 캐릭터들에게 휘둘리는 법이 없이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평범한 거대로봇 작품이었다면 여간해서는 해결하기 힘든 캐릭터와 메카닉 사이의 역할에 대한 딜레마를, 이 '자이언트 로보'는 거의 최상의 형태로서 해결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마가와의 그러한 연출기법 자체는 사실은 상당히 아슬아슬한 기반 위에서 가까스로 균형을 맞추고 있었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출중한 캐릭터들의 매력은 물론 그 대부분이 이마가와 감독에 의해 만들어진 이미지이기는 하지만, 역시 요코야마의 원작들이라고 하는 백업이 없었다면 OVA 7편이라는 짧은 기간동안 그 정도의 존재감을 얻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며, 시종일관 흥미진진하게 진행되는 스토리 역시, 애초부터 '자이언트 로보 THE ANIMATION ~ 지구가 정지하는 날~'이라는 OVA 작품이 이마가와 감독의 원안 스토리 중 '클라이맥스' 부분에 위치하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었던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애니메이션판 '자이언트 로보'는 그 처음부터 끝까지가 '클라이맥스= 절정'인 셈인데, 후에 이마가와 감독이 발표한 이 작품의 배경에 존재하는 TV 애니메이션 급의 방대한 플롯이라는 것은 결국, 이 '절정'을 성립시키기 위해서 존재했어야 하는 발단, 전개, 결말의 '대체품'에 불과하다고 말할 수 있겠다. 그런 의미에서 이 작품은 기존의 '작극'에 대한 상식을 철저히 파괴한 문제작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러한 시도가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이마가와 야스히로 감독의 상식을 초월한 재능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 작품은 그러한 초월적인 작품성과 재미를 동시에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OVA라는 장르가 가지고 있던 한계와 매니아용 작품이라는 선입견으로 인해, 당시에는 일부 계층에게서만 뜨거운 반응을 모았을 뿐, 결국 거대로봇 장르의 주류와는 어느정도 거리를 둔 위치에 머무르게 되고 말았다. 하지만 그의 뛰어난 연출력은 일반 팬들보다도 오히려 젊은 애니메이터들 사이에서 더 높게 평가되었고, 그 이후 이마가와 감독은 '기동무투전 G 건담'이나 '철인 28호' 등의 진짜 메이저 작품들을 통해 거대로봇 장르의 주류에서도 그 역량을 인정받는 위치에 오르는데 성공하였다.

written by 백금기사(lgaim.egloo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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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이리아부친 2006/05/25 12:10 #

    굉장한 분이죠.
    개인적으론 이마가와감독님은 수호요정 미셸 각본 맡았을때가 제일 쇼킹했었음.
  • Werdna 2006/05/25 13:02 #

    마코토 고바야시를 거장이라 칭하기에는 조금...무리가 있지 않나요? (특히 요코야마 미츠테루 라는 이름이 나오는 글 안에서는)
    아뭏든 디자인 철학이 남다른 양반이긴 하죠. 리얼로봇도 전부 수퍼로봇처럼 재디자인하는...(더블제타 즈바이 는 필견.)
  • 루나 2006/05/26 01:29 # 삭제

    확실히 어느 부분 하나 클라이막스가 아니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어 보였었죠. 그리고 또 그런게 먹혀 들어갔다는게 쇼킹
  • paro1923 2006/05/26 01:50 # 삭제

    이러니 저러니 해도, 명작이었건만,
    OVA에 대한 선입견의 한계였던 걸까요...
    (헌데, 정작 故 요코야마 씨는 이 작품을 싫어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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