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06월 24일
거대로봇은 누구를 위해 싸우나? (6)
다이탄 3의 적인 메가노이드는 상당히 이색적인 적입니다. 이들은 다른 작품의 적들처럼 인류를 무력으로 공격해서 제압하기보다는, 인류 사회 내부로 침투해 자신들의 동족을 늘리는 수법을 기본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이들과 맞서 싸우는 하란반죠의 전략은 이들 메가노이드들을 발견, 색출해낸 뒤 제거하는 방식이 기본적입니다. 따라서 첩보전의 색채가 강하죠.
사실 메가노이드들도 기본적으로는 인간이고, 원래는 우주 개척을 위한 개조인간으로 만들어졌지만 개조된 육체에 맞게 자아를 강화하는 과정에서 이기심과 자만심이 강해져버리는 부작용이 생겨나고 말았죠. 이들은 전 인류를 자신들과 같은 메가노이드로 개조하기 위해 갖가지 음모를 꾸미고 이 과정에서 메가노이드를 증오하는 하란반죠와 충돌하는 것입니다.
결국 하란반죠의 싸움은 육체와 함께 정신마저 왜곡된 메가노이드의 손에서 인간의 존엄성을 지킨다는 명분을 갖고 있는 한편, 가족들을 메가노이드 실험으로 죽여버린(그리고 아마 자신까지 개조한) 아버지에 대한 분노와 복수심이 뒤섞여있기도 합니다. 어찌됐든 하란반죠과 다이탄 3의 전투는 다른 거대로봇물과는 달리 상당히 개인적인 차원으로 보입니다.
지금까지, 우선 '기동전사 건담' 이전까지의 몇몇 거대로봇 작품들에 등장하는 적들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이들의 대부분은 인류 문명이나 인류라는 종족 자체를 파괴하기 위해 공격해온 '인류의 적'들이고, 이에 맞선 거대로봇들은 현생 인류의 현상 유지를 위해서 싸운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것이 거대로봇물에서 주장하는 '정의'라 할 수 있겠군요.
확실히 이 시기까지 만들어진 거대로봇물 중, 순수한 인류끼리의 전투가 그려지는 작품은 '철인 28호'와 '혹성로보 당가도 A'의 두 작품 뿐입니다. 그나마 두 작품 모두 본격적인 인류끼리의 '전쟁'을 그리지는 않았죠. 이것이 '기동전사 건담' 이전의 거대로봇물이 갖고 있었던 일종의 한계라 할 수 있지만, 그렇기에 이런 작품들은 손쉽게 '정의'를 보여줄 수가 있었습니다.
사실 이런 식의 '정의'는 실제 인류사에 있어서도 가장 오래된 형태의 '정의' 중 하나입니다. 야생동물이나 자연 재해 등 외부의 위협에 맞서서 공동체를 유지하는 행위는 인류 역사가 시작되면서부터 '정의'로 인식되어 왔죠. 이후에 이것이 인류 내부의 투쟁에도 적용되면서 소위 '정의'라는 개념의 상대화와 변질이 시작된 것이고요.
그런만큼 초기 거대로봇물과 그 이전의 특촬 히어로물에서 그려지는 '정의'는 그야말로 선사시대에나 있을 수 있었던 순수하고 절대적인 정의의 개념을 현대에 다시 되살린 것이 시청자들의 본능을 자극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인류가 선사시대만큼이나 위험한 상태로 돌아가야 한다는 별로 유쾌하지 않은 대전제가 필요하지만요.
결론적으로 슈퍼로봇물에서 그려지는 '정의'가 제대로 실현되기 위해서는, 인류가 그동안 이룬 문명의 성과를 부정할 수 있을만한 강대한 위협이 인류 앞에 출현해야 하고, 그 앞에서 인류는 마치 선사시대 사람들마냥 두려워 떨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상황에서는 완전히 미친 사람 몇몇을 제외하면 모두가 살아남기 위한 일치된 '정의'를 찾게 마련이지요.
하지만 그런 극단적인 전개도 많이 반복되면 지겨워집니다. 선사시대 사람들처럼 벌벌 떠는 인류를, 신이나 영웅과 같은 위대한 존재가 구해준다는 패턴은 확실히 사람들에게 효과적으로 전달되는 원형적 이미지이긴 하지만, 거대로봇물의 문제는 이런 소재를 단기간에 너무 많이 써먹었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드디어 이런 신화적 모티브에서의 일탈이 시작되는 것이죠.
written by 백금기사(lgaim.egloos.com)
사실 메가노이드들도 기본적으로는 인간이고, 원래는 우주 개척을 위한 개조인간으로 만들어졌지만 개조된 육체에 맞게 자아를 강화하는 과정에서 이기심과 자만심이 강해져버리는 부작용이 생겨나고 말았죠. 이들은 전 인류를 자신들과 같은 메가노이드로 개조하기 위해 갖가지 음모를 꾸미고 이 과정에서 메가노이드를 증오하는 하란반죠와 충돌하는 것입니다.
결국 하란반죠의 싸움은 육체와 함께 정신마저 왜곡된 메가노이드의 손에서 인간의 존엄성을 지킨다는 명분을 갖고 있는 한편, 가족들을 메가노이드 실험으로 죽여버린(그리고 아마 자신까지 개조한) 아버지에 대한 분노와 복수심이 뒤섞여있기도 합니다. 어찌됐든 하란반죠과 다이탄 3의 전투는 다른 거대로봇물과는 달리 상당히 개인적인 차원으로 보입니다.
지금까지, 우선 '기동전사 건담' 이전까지의 몇몇 거대로봇 작품들에 등장하는 적들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이들의 대부분은 인류 문명이나 인류라는 종족 자체를 파괴하기 위해 공격해온 '인류의 적'들이고, 이에 맞선 거대로봇들은 현생 인류의 현상 유지를 위해서 싸운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것이 거대로봇물에서 주장하는 '정의'라 할 수 있겠군요.
확실히 이 시기까지 만들어진 거대로봇물 중, 순수한 인류끼리의 전투가 그려지는 작품은 '철인 28호'와 '혹성로보 당가도 A'의 두 작품 뿐입니다. 그나마 두 작품 모두 본격적인 인류끼리의 '전쟁'을 그리지는 않았죠. 이것이 '기동전사 건담' 이전의 거대로봇물이 갖고 있었던 일종의 한계라 할 수 있지만, 그렇기에 이런 작품들은 손쉽게 '정의'를 보여줄 수가 있었습니다.
사실 이런 식의 '정의'는 실제 인류사에 있어서도 가장 오래된 형태의 '정의' 중 하나입니다. 야생동물이나 자연 재해 등 외부의 위협에 맞서서 공동체를 유지하는 행위는 인류 역사가 시작되면서부터 '정의'로 인식되어 왔죠. 이후에 이것이 인류 내부의 투쟁에도 적용되면서 소위 '정의'라는 개념의 상대화와 변질이 시작된 것이고요.
그런만큼 초기 거대로봇물과 그 이전의 특촬 히어로물에서 그려지는 '정의'는 그야말로 선사시대에나 있을 수 있었던 순수하고 절대적인 정의의 개념을 현대에 다시 되살린 것이 시청자들의 본능을 자극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인류가 선사시대만큼이나 위험한 상태로 돌아가야 한다는 별로 유쾌하지 않은 대전제가 필요하지만요.
결론적으로 슈퍼로봇물에서 그려지는 '정의'가 제대로 실현되기 위해서는, 인류가 그동안 이룬 문명의 성과를 부정할 수 있을만한 강대한 위협이 인류 앞에 출현해야 하고, 그 앞에서 인류는 마치 선사시대 사람들마냥 두려워 떨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상황에서는 완전히 미친 사람 몇몇을 제외하면 모두가 살아남기 위한 일치된 '정의'를 찾게 마련이지요.
하지만 그런 극단적인 전개도 많이 반복되면 지겨워집니다. 선사시대 사람들처럼 벌벌 떠는 인류를, 신이나 영웅과 같은 위대한 존재가 구해준다는 패턴은 확실히 사람들에게 효과적으로 전달되는 원형적 이미지이긴 하지만, 거대로봇물의 문제는 이런 소재를 단기간에 너무 많이 써먹었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드디어 이런 신화적 모티브에서의 일탈이 시작되는 것이죠.
written by 백금기사(lgaim.egloo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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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y | 2008/06/24 00:41 | 로봇 파라다이스 | 트랙백 | 덧글(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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