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 메탈 패닉에 대한 짧은 고찰 애니 & 게임 이야기

우리나라에서도 유명한 ‘슬레이어즈’나 ‘마술사 오펜’ 등 드래곤 매거진(*주1 - 이하 DM) 계열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이라면, 바로 동일한 작품 세계 안에 시리어스와 개그를 공존시키고 있는 작품이 유달리 많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대개 원작 소설은 시리어스편과 개그편으로 각각 시리즈가 나뉘어져 진행되는 경우가 많은데, 여기서 언급하려고 하는 ‘풀 메탈 패닉’ 역시 이러한 DM계열 작품의 흐름에서 크게 벗어나 있지는 않다.
하지만 이 ‘풀 메탈 패닉’에서 특기할 점은, 어디까지나 ‘환타지’라는 동일 장르에 속해있는 ‘슬레이어즈’ 등과는 달리, 풀 메탈 패닉은 로봇 애니메이션과 학원 러브코미디라는, 쉽게 융합하기 힘든 두 장르를 하나의 세계관 내에서 그리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이전에도 국내에도 잘 알려진 ‘절대무적 라이징오’나 ‘열혈최강 고우자우라’(국내방영 타이틀은 ‘무적 캡틴사우르스’)처럼 학원물과 로봇물의 융합을 시도한 작품은 있었지만, 비교적 여유 있는 세계관 연출이 가능한 정통파 슈퍼로봇물과, 학우들 사이의 우정과 신뢰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정통파 학원물은 서로간의 상성도 좋았고, 선라이즈의 우수한 제작진의 능력도 있어서 완전한 하나의 세계관으로 융합되는데 큰 무리는 없었다.
그러나 풀 메탈 패닉의 경우, 세계관을 다루기가 슈퍼로봇물만큼 수월하지 않은 리얼로봇 작품의 설정에 복잡미묘한 인간관계와 예측불능의 사건들의 연속인 학원 러브코미디를 융합시킨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는데, 소설의 경우 DM의 선례에 따라 시리어스편과 개그편을 한권 건너씩 발매하는 것으로서 어느 정도 해결을 볼 수 있었지만, 애니메이션화 되면서 26화짜리 단일 시리즈에 개그와 시리어스를 함께 담으려했던 시도는 적지 않은 무리수를 낳고 말았다.
이와 비슷한 시도로서 ‘신세기 에반게리온’에서도 로봇 액션물과 학원물의 요소를 어느 정도 공존시키기는 했지만, 기본적으로는 무겁고 시리어스한 전투드라마가 작품 전체의 분위기를 장악하고 있었고, 어디까지나 부수적인 역할에 지나지 않던 학원물로서의 드라마는 스토리가 진행됨에 따라 서서히 붕괴되어가는 운명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풀 메탈 패닉’의 경우, 적어도 현 시점까지는 이 두 가지 요소가 캐릭터 소개편이라 할 수 있는 최초의 에피소드를 제외하고는 기본적으로 독립되어 있다.
이 작품이 애니메이션화가 되면서, 1기 시리즈의 제작을 맡은 곤조는 진지한 리얼로봇 작품으로서의 에피소드를 골격으로, 그 사이에 학원에서의 가벼운 삽화를 집어넣는 에반게리온에 가까운 방법을 썼지만, 애초부터 작품 중에서는 거의 완전히 분리되어 있는 ‘전장’과 ‘학원’을 동시에 그리려고 한 시도는 소설판에서도 ‘본편’이라 불릴 만큼 보다 진중한 액션 에피소드의 무게감을, 상대적으로 비중이 적었던 가벼운 ‘외전’ 에피소드들이 충분히 받쳐주지 못한, 다소 균형 감각이 떨어지는 결과물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애당초, 리얼리티보다는 다분히 밀리터리 매니아들의 취향에 가까운 현대전의 분위기에, 하드 SF적인 세계관의 단편과 ‘평이한’ 리얼로봇 작품의 액션을 버무려서 만들어진 ‘본편’은 밀리터리 작품으로서도, 로봇 애니메이션으로도 어느 정도의 우려를 안고 있기는 했다.
이는, 참신한 무언가 보다는 기존에 검증된 인기요소들을 안전한 범위 안에서 가공하는데 주력하는 현재의 일본 창작계의 현실을 반영한다고 볼 수도 있는데, 기체를 바꿔가면서 계속 도전해오는 숙명의 라이벌, 리얼로봇을 표방한 주제에 주역 로봇에게만 내장되어 있는 뭔가 특별한 장치, 주인공의 약점을 알고 있는 옛 전우와의 비극적인 싸움 등 로봇 애니메이션으로서의 풀 메탈 패닉은 그야말로 리얼로봇 애니메이션 팬이라면 어디선가 한 번씩은 본 적이 있는 전형적인 패턴을 답습하고 있다.
하지만 역으로, 이렇게 익숙한 패턴을 한 작품 내에서 모두 즐길 수 있다는 것도 사실은 상당히 드문 일이기는 했고, 이러한 ‘전형성’들을 한 작품 안에서 커다란 무리 없이 융합시킬 수 있었던 것이 원작이 가졌던 가장 큰 매력이었음을 생각할 때, 적절한 어레인지와 무난한 연출로 로봇 애니메이션으로서의 재미를 살리는데 성공한 1기 시리즈는 리얼로봇 애니메이션작품으로서는 어느 정도 납득할만한 완성도를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앞서도 말했듯이 ‘풀 메탈 패닉’은 순수한 로봇 애니메이션이 아니라, 로봇 애니메이션과 러브코미디의 속성을 함께 가지고 있는 작품이라는 것이 문제였다. 애초부터 ‘소설’이라는, 로봇 작품과는 가장 인연이 적은 매체로 데뷔한 풀 메탈 패닉이 애니메이션화까지 이뤄낼 수 있었던 것은 소설로는 애초부터 충분한 표현이 불가능했던 로봇 액션이나, 리얼리티보다는 매니아들의 취향에 가까운 밀리터리 액션 때문만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지금까지의 로봇 애니메이션의 전형성의 집대성이라 할 수 있는 로봇 액션 부분과는 달리, 풀 메탈 패닉을 떠받치는 또 하나의 기둥이라 할 수 있는 러브코미디 부분은 지금까지의 DM 작품 이상의 무언가를 느끼게 한다.
어느 날 갑자기 ‘이상한’ 녀석이 나타나 평범한 학교생활을 휘저어놓는다는 설정은 지금까지의 소년만화에서도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소재이긴 하지만, 그것을 요리해나가는 방법에 있어서 작가는 DM 작품에서 많이 찾아볼 수 있는 건강미 넘치는 히로인인 카나메와, 초인적인 능력을 갖고 있지만 상식적인 부분, 특히 연애관계에 대해서는 먹통인 주인공 소스케의 삐걱거리면서도 유쾌한 관계를 ‘학원물’이라는 틀 속에 완벽하게 담아내고 있다.
지금까지의 다른 DM 작품도 절반 이상이 러브코미디적 요소를 가지고 있기는 했지만, 그 중에서도 러브코미디의 왕도 중의 왕도라 할 수 있는 현대 학원물에서 일찍이 이정도의 완성도를 보인 작품은 없었던 것이다.
이 작품은 단순히 학교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우왕좌왕 코미디만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착실히 성장해가는 두 사람의 사랑을 함께 지켜볼 수 있는 데서 그 진정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같은 러브코미디라고 해도, 언제 깨어질지 모르는 아슬아슬한 풋사랑을 지켜보는 재미와는 또 다른, 아직은 미숙하지만 갖가지 사건을 겪으며 한 단계씩 성장해가는 두 사람의 모습을 보는데서 느끼는 안도감과 흐뭇함이 이 작품에는 있다.
그러한 ‘외전’ 파트의 잔잔한 안도감이, 생사를 넘은 사투를 헤쳐가면서 점점 강한 인연으로 맺어져가는 ‘본편’에서의 카나메와 소스케의 모습과 시너지 효과를 효과를 일으키면서, ‘풀 메탈 패닉’이라는 작품은, 캐릭터성만을 앞세운 수많은 미소녀 애니메이션의 범람 속에 이미 멸종된 줄만 알았던 정통파 러브코미디의 재미를 다시금 느끼게 해주는 것이다.

그랬던 만큼, 어디까지나 로봇 애니메이션 작품의 골격을 유지하느라 러브코미디로서의 요소가 대폭 축소된 애니메이션 1기 시리즈의 아쉬움은 한층 더 커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2기 애니메이션 시리즈인 ‘풀 메탈 패닉? 후못후’ (이하 후못후)는 이러한 아쉬움을 단번에 날려버리는 높은 완성도를 자랑함과 동시에, 로봇 액션에 치우쳐 있던 1기 시리즈에서 다소 부족했던 균형감각까지도 보완해버리는 효과를 발휘했다. 요는, ‘후못후’가 있음으로 해서 애니메이션 작품 ‘풀 메탈 패닉’은 비로소 당초 원작의 의미를 최대한으로 살려낼 수 있게 된 것이다.
한 시리즈 내에서 로봇 애니메이션과 러브코미디 부분이 불안하게 동거하고 있던 1기 시리즈와는 달리, ‘후못후’는 제작 당초부터 리얼로봇 애니메이션으로서의 요소를 완전히 포기함으로서, 비로소 ‘풀 메탈 패닉’이 가진 본격파 러브코미디로서의 진수를 보여준다.
얼핏 보기에는 각각 독립된 개그 에피소드들의 집합으로 보이는 옴니버스식 구성도 사실은 시리즈로서의 치밀한 계산을 그 바탕에 깔고 있으며, 각 에피소드가 진전될 때마다 두 사람의 관계가 조금씩 진짜 사랑에 가까워져 가는 모습을 보며 흐뭇해 할 수 있는 것도, 최근의 작품에서는 보기 힘든 수준 높은 연출력을 느끼게 해준다.
모든 것이 완벽하게만 보이는 첫사랑의 부활보다도, 비록 엉망진창이지만 포기하기는 싫은 지금의 사랑을 택한 소녀의 선택에서부터, 말괄량이인줄만 알았던 소녀의 숨겨진 아름다움을 보고서는 처음으로 진심에서 ‘아름답다’라는 말을 해준 소년의 모습으로 이어지는 ‘후못후’의 러브스토리는, 오로지 주인공에게 달라붙는 여자들의 머릿수로 승부하려고 하거나, 아슬아슬한 성적 매력만을 어필하려고 하는 최근의 많은 러브코미디 작품과는 확실히 질적 수준을 달리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물론, ‘후못후’를 말함에 있어서는 그 특유의 요절복통 코미디도 빼놓아서는 안 될 것인데, 일단 바깥으로 보이는 작품의 중심은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후못후’라는 특이한 소리를 내는(*주2) 포켓몬 풍의 귀여운 캐릭터인 ‘본타군’에 있다. 본편에서 주인공 소스케의 손발이 되어 활약하는 주역 메카 ‘아바레스트’와는 그 모습부터가 대조적인 이 ‘본타군’은 ‘후못후’에 있어서는 본편의 아바레스트와 마찬가지로 소스케와 하나가 되어 대활약한다.
조종석을 비롯한 내부구조의 묘사를 보면 아바레스트와 본타군은 의외로 닮아있다는 점을 알 수 있는데, 리얼로봇의 외형과 기능을 지녔으면서도 사람의 정신력을 물리력으로 바꾸는 신비의 힘을 지닌 아바레스트와, 겉보기는 놀이공원의 어트랙션 슈트(*주3)이면서도 실제로는 군용 로봇의 기술이 소형, 고성능화되어 있는 최첨단 병기인 본타군은 각각 그 활약의 장은 다르지만, 작품 속에서의 역할은 일맥상통하는 바가 있다.
비록 리얼로봇은 고사하고 로봇이라고 불리기에도 다소 애매한 본타군이기는 하지만(*주4), 그 기상천외한 센스와 요절복통의 활약은 애니메이션이라는 매체를 통해 대폭발하여 시청자들에게 원작 소설 이상의 강렬한 인상을 주었고, ‘풀 메탈 패닉’이 가진 독특한 세계관과 개그 센스가 있었기에 탄생할 수 있었던 본타군은 말 그대로 ‘풀 메탈 패닉’의 세계관을 상징하는 존재라고도 할 수 있겠다.

마지막으로 다소 아쉬운 점이라면, 시리어스한 세계관과 요절복통의 드라마를 각각 번갈아가며 즐길 수 있었던 원작 소설과는 달리, 1기와 후못후의 작풍이 확연하게 차이가 나는 애니메이션에서는 원작에 비해 전체적인 세계관의 이미지를 파악하기가 다소 껄끄럽고, 스토리의 적절한 밀도차이로 인한 상승효과도 다소 반감되는 점은 어쩔 수 없다고 하겠다.
하지만, 이미 국내에도 발매되어 있는 원작소설의 내용을 충분히 숙지한 상태라면 이러한 단점은 거의 느껴질 수 없으며, 원작 소설의 순서에 맞춰 1기와 후못후를 번갈아가며 감상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겠다.
이 글에서는 주로 ‘풀 메탈 패닉’의 로봇 작품으로서의 측면과, 러브코미디로서의 측면을 중점적으로 언급했지만, 그 외에도 이 작품은 적재적소에 쓰인 수많은 패러디와, 학원과 전장이라는 각기 다른 무대에서 나름대로의 개성을 발산하는 다양한 캐릭터들, 그리고 현실 이상으로 냉혹하고 비정한 세계정세 속에서도 ‘세계평화’라고 하는, 정말 꿈같은 이상을 믿고 고독하게 싸워나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주는 감동 등 많은 매력적인 요소로 가득 차 있다. “요즘 애니메이션은 옛날 같은 재미가 없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한번쯤은 편견을 버리고 솔직한 마음으로 ‘풀 메탈 패닉’의 전부를 천천히 감상해 보는 것은 어떨까.

(*주1- 후지미 쇼보에서 간행되는 월간지. 주로 환타지나 SF등 환상소설을 연재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대히트작 ‘슬레이어즈’가 연재되고 있는 잡지로서도 유명. 현재도 ‘슬레이어즈 스페셜’, ‘풀 메탈 패닉’ 등을 연재중.)

(*주2- 이 소리만을 위해 ‘아즈망가 대왕’의 치요 역으로 유명한 가네다 토모코를 캐스팅!)

(*주3- 우리나라의 대형 놀이공원이나 어린이 대상의 이벤트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놀이공원의 이미지 캐릭터나 다른 유명 캐릭터의 모습을 본뜬 커다란 인형. 사람이 안에 들어가서 움직인다.)

(*주4- 소스케가 개조한 후, 본편에서 잠시 보이는 내부골격은 이미 어트랙션 슈트와는 다른 완벽한 금속제 ‘로봇’의 모습이었다.)

덧글

  • 그란덴 2004/03/21 12:22 #

    백금기사님 이 글좀 퍼가도 되겠습니까? 주소는 http://cafe.daum.net/FullMetalPanic 입니다. ^^
    좋은 감상글이라서 회원들께 보여드리고 싶네요.
  • 백금기사 2004/03/21 12:25 #

    낙방먹은 글을 좋게 봐주시니 제가 영광입니다.
    블로그 소개정도만 해주시면 더할나위없이 감사하겠습니다;;;
  • 미친과학자 2004/05/04 16:10 #

    후못후 좋지요~
    연구실에서 돌렸더니 주변인들 전부가 1060도 뒤집어 지더라는.
  • miel 2004/06/30 19:38 #

    좋아요 풀메탈 패닉.....-_-)b
  • zetaplus2 2007/09/22 22:41 # 삭제

    좋은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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