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동경찰 패트레이버 - 작품 리뷰 - 로봇 파라다이스

레이버, 그것은 산업용으로 개발된 로봇의 총칭이다. 건설, 토목분야에 폭넓게 보급되었지만, 레이버에 의한 범죄도 급증. 경찰청은 특과차량 2과, 패트롤 레이버 부대를 신설하여 이에 대항하였다. 통칭 패트레이버의 탄생이다.

80년대의 로봇 애니메이션 전성기를 온몸으로 느끼며 살았던 만화가 유우키 마사미가 무명시절부터 만들고 있던 경찰로봇 애니메이션의 원안을 바탕으로, 그의 오랜 친구였던 메카닉 디자이너 이즈부치 유타카와 각본가 이토 카즈노리, 그리고 그의 아내이자 뛰어난 캐릭터 디자이너인 타카다 아케미가 모여서 결성된 창작집단 헤드기어의 기획을 반다이, 선라이즈, 도호쿠신사, 다츠노코 프로덕션에서 채용하여 1989년 OVA(오리지널 비디오 애니메이션)로 출발한 이 작품은, 일반적으로는 초기 OVA 시리즈와 극장용 애니메이션 두 작품의 감독을 맡은 오시이 마모루의 대표작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오시이 마모루는 이 작품의 기획단계부터가 아닌, 구체적인 애니메이션화로 들어가는 단계에서 헤드기어에 합류한 일종의 고용 감독이었지만, 그의 출세작이자 전설적인 히트작인 장편 TV 애니메이션 ‘우루세이 야츠라’에서 이토 카즈노리와 오랫동안 호흡을 맞춰온 오시이는 밝고 건강한 러브코미디 작품이었던 우루세이 야츠라 이후 ‘천사의 알’ 등에서 보여준 철학적이고 무거운 모습을 잠시 벗고 예전의 경쾌한 분위기로 돌아가 기본적으로는 액션을 중시한 거대로봇 작품이면서도 로봇의 활약보다는 어디까지나 인간이 중심이 되는 독창적인 작품 세계를 구축하는데 성공하였다. 오시이 자신의 언급에서도 보이듯이 패트레이버 초기 OVA 시리즈의 곳곳에는 ‘우루세이…’의 오마쥬가 적지 않게 들어가 있었고, 실제로 감독, 각본가, 캐릭터 디자이너는 물론 성우진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첫 히트작의 그림자가 짙게 깔려있는 것이 사실이었다. 이것은 ‘우루세이…’ 이후 작품성은 인정받으면서도 상업적으로는 실패한 감독으로서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던 오시이가 다시 초심으로 돌아갈 수 있는 밑바탕이 되기도 하였으며, 이러한 시도의 성공으로 명성과 자신감을 되찾은 그는 서서히 원래 자신이 추구하고 있었던 염세적이고 철학적인 작품세계를 다시금 펼쳐 보이기 시작한다. 그리하여 완성된 것이 바로 오시이 마모루의 완전부활을 선언하는 극장용 작품, 패트레이버 THE MOVIE였다.

패트레이버의 배경인 1999년이 가지고 있는 세기말적인 분위기를 바탕으로, 성서구절을 인용한 묵시록적 분위기의 사건 전개와, 하이테크 기계문명이 가져올 수 있는 뜻밖의 재앙, 그리고 아무리 발달한 문명과 번영을 손에 넣었더라도 여전히 근본적인 어리석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인류의 모습을 보여주는 디스토피아적 분위기가 밑바탕에 짙게 깔려있으면서도, 이에 꺾이지 않는 순수한 사람들의 불굴의 의지를 훌륭하게 그려낸 본 작품은 이후에 오시이 마모루의 최고 걸작이라 불리게 되는 ‘공각기동대’ 의 기본 골격을 이미 대부분 갖추고 있는 완성도 높은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졌다.

그러나, 어느새 ‘패트레이버’는 당초 유우키 마사미가 생각하고 있던 구상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는 작품으로 변질되어가고 있었다. 어디까지나 한명의 팬으로서 80년대 초반의 로봇 애니메이션 전성기와 후반의 쇠퇴기를 모두 경험한 그가 만들기 원했던 것은 수많은 명작과 졸작의 범람 속에 어느새 잊혀져 버린 로봇 애니메이션 본래의 재미를 되살릴 수 있는 작품이었던 것이다. 그것은 메카닉 디자이너 조수로 출발하여 로봇 애니메이션의 전성시대를 온 몸으로 겪으면서 결국 80년대 로봇 디자인 중에서도 하나의 최고봉이라고 할 수 있는 ‘뉴 건담’ 을 자신의 손으로 탄생시킨 이즈부치 유타카에게 있어서도 마찬가지였다. 그에게는 자신이 처음으로 완전한 무에서 창조해낸 로봇인 ‘잉그램’의 활약이 로봇 애니메이션 본래의 무대라고 할 수 있는 TV에서, 그것도 보다 강력하고 매력적인 적을 상대로 펼쳐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확실히 오시이의 패트레이버는 깊이가 있고, 로봇 애니메이션으로서도 상당히 높은 평가를 받고 있었지만 적어도 그것은 다른 멤버들의 생각과는 어느 정도 거리가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OVA 시리즈와 극장용 애니메이션의 성공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TV 시리즈에서는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일단 감독은 요시나가 나오유키였지만, 실질적으로 제작의 중심이 된 인물은 각본가인 이토 카즈노리였다. 이토는 오시이에 비해서 유우키 마사미의 본래 의도를 존중하면서도, 각각의 캐릭터를 그려냄에 있어서는 보다 자신의 색채를 강하게 드러내었다. 이전 시리즈와의 단절을 선언하는 뜻에서 세계관도 바뀌어졌다. 우선 오프닝 나레이션에 등장하는 주인공의 부서가 OVA와 극장판의 ‘특수차량 2과’에서 ‘특과차량 2과’로 변경되었고, 기본적으로는 극장판의 디자인에 준하고 있었던 주인공 로봇, 잉그램 1호기 = 알폰스의 색도 변경되었다. 그리고 주인공 이즈미 노아가 알폰스에 타게 되는 과정과 미국에서 온 연수생 카누카 클랜시의 등장도 OVA와는 전혀 다른 에피소드로서 그려졌다. 그러나 여전히 헤드기어의 멤버였던 오시이 마모루도 패트레이버에서 완전히 손을 뗀 것은 아니었고, 일단 감독이라는 입장에서 자유롭게 된 그는 TV 시리즈에서는 한명의 각본가로서, 이야기의 큰 줄기와는 아무 관련이 없는 코미디 색채가 강한 에피소드를 많이 썼다. 패트레이버 극장판과는 완전히 상반된 분위기를 보이고 있는 이러한 에피소드들은 TV 시리즈의 분위기와도 잘 녹아 들어갔고, 각 캐릭터들을 보다 인간적이고 매력있는 인물로 보이게 하는데도 큰 공헌을 하였다.

이렇게 하여 시작된 패트레이버 TV 시리즈는 당초에는 방향성을 잡지 못하고 허둥대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그 이유로서는 OVA 시리즈에서 TV 시리즈로 바뀌면서 급격하게 바뀐 제작환경에 스탭들이 잘 적응하지 못했던 탓이기도 했고, OVA 시리즈 이상으로 로봇 애니메이션의 다양한 측면(전통적이라고 할 수 있는 괴수나 폭주로봇과의 대결에서부터 재난구조임무나 견습 파일럿의 훈련임무 같은 변형된 패턴, 그리고 힘든 단체생활을 하고 있는 주인공들의 일상사나 그들이 술자리에서 스트레스와 갈등을 푸는 에피소드 같은, 그때까지의 로봇 애니에서는 보기 힘든 모습 등)을 그려내려고 했던 과정에서 나타난 시행착오, 그리고 무엇보다도 오시이 패트레이버를 능가해야 한다는 지나친 압박감과 대항의식을 원인으로 들 수 있겠다.

그러나, 주역 메카 알폰스의 라이벌이라 할 수 있는 그리폰의 등장과 그 그리폰을 만들어낸 다국적기업 샤프트, 그리고 그 샤프트마저도 자신의 발판으로서 이용하고 있을 뿐인 야심가 우츠미가 등장하면서 작품의 긴장감은 높아지고, 이 과정에서 이토 카즈노리의 주특기인 강렬한 개성의 인물들이 충돌하는 드라마와 유우키 마사미가 추구했던 로봇 애니메이션 본래의 재미, 그리고 이즈부치 유타카가 혼신의 힘을 기울여 디자인한 그리폰의 매력이 어우러지면서 패트레이버 TV 애니메이션의 인기는 급격히 상승하기 시작했다.

패트레이버가 로봇 애니메이션으로서 가지고 있었던 가장 커다란 특징은 기본적으로 이전까지의 어떤 로봇 애니메이션보다도 리얼리티를 중시한 작품이었으면서도, 전쟁을 배경으로 활약하는 밀리터리 로봇이 아니라고 하는 점이었는데, 이전까지는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었던 이 두 속성의 분리는 지금의 시점으로 보더라도 가히 혁명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이는 동시에, 이미 하나의 장르로서 진화의 정점에 다다르고 있던 지금까지의 로봇 애니메이션의 패턴과는 다른, 완전히 새로운 무언가를 필요로 하는 것이었는데, 여기에 대해 스탭들이 찾아낸 해답은 바로 원조 거대로봇 애니메이션인 ‘철인 28호’에 있었다.

겉보기에는 닮은 구석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철인 28호와 잉그램 1호기 = 알폰스에게는 한가지 커다란 공통점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경찰업무를 맡고 있는 로봇’ 이라는 것이었다. 초창기의 로봇 애니메이션이었던 철인 28호는 범죄조직을 상대로 한다는 특성 때문에 탐정물로서의 요소도 어느 정도 가미되어 있었는데, 이는 날카로운 추리력으로 사건의 본질을 파악하는 고토 대장과 그를 돕는 경시청의 두 형사의 모습으로 이어졌고, 외부에서 리모콘으로 조종하도록 되어있는 철인 28호 고유의 특징도 외부에서 잉그램의 활약을 보조하는 백업요원과 지휘차량으로 승계되어, 잉그램은 인간이 탑승하는 로봇 특유의 파일럿과의 일체감과, 외부에서 조종되는 로봇이 가진 객관적인 존재감을 함께 가지고 있는 독특한 존재가 되었다. (이는 철인과 같은 완전한 리모콘식 로봇인 팬텀과의 싸움에서 보여준 잉그램의 승리나, 외부의 지시를 무시하며 싸운 그리폰에게서 얻어낸 승리를 통해 잉그램의 최대 강점으로서 더욱 확고하게 굳어진다)

이 외에도 철인 28호에 대한 다양한 오마쥬는 작품 곳곳에서 나타나지만, 오시이 마모루가 철인 28호의 많은 요소를 받아들였음에도 불구하고 히어로 로봇으로서의 패트레이버를 부정하였음에 비해, 유우키와 이토는 철인이 가진 히어로적인 요소도 거리낌없이 작품 속에 받아들였고, 그 결과 나타난 것이 철인 28호의 최대의 라이벌이자 원조 라이벌 메카였던 블랙 옥스의 직계 후손이라고도 할 수 있는 그리폰의 등장이었다. 이전의 많은 밀리터리 로봇들이 보여준 ‘전장에서의 라이벌’이라고 하는 개념과는 달리, 이 그리폰은 잉그램의 유일무이한 최대의 강적으로서, 그리고 원래는 어디까지나 경찰임무에 머물러야 할 잉그램이 반드시 파괴하지 않으면 안될 절대적인 적으로서 등장한다. 그리고 그 속성도, 그때까지 패트레이버에 등장한 다른 로봇들을 비웃듯, 기능보다는 카리스마를 우선한 디자인과 마치 생물의 그것과 같은 유연한 움직임, 그리고 패트레이버의 세계관에서는 결코 허락되지 않을 것 같았던 하늘을 나는 능력을 갖고 있는 등 모든 면에서 리얼로봇보다는 슈퍼로봇쪽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오시이 마모루는 ‘레이버는 날지 않아’라는 말 한마디로 자신의 패트레이버 세계관 안에서 그리폰의 존재 자체를 부정했다)

그러나 이러한 그리폰의 등장과 활약은 패트레이버의 세계관을 망가뜨리기는커녕, 오히려 TV판 패트레이버를 오시이의 그림자 속에서 완전히 벗어나게 만든 쾌거로서 작용하였다. 당초의 기획의도였던 로봇 애니메이션 본래의 재미는 이로서 충분히 만족되었고, 이 에피소드를 기점으로 완전히 물이 오른 스탭들은 이미 후반기로 들어선 작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정열적으로 다양한 에피소드를 만들어낸다. TV판의 마지막 에피소드는 세월의 흐름과 함께 구식화된 잉그램이 ‘후계기’에 밀려 시대에 뒤쳐지는 처지가 되면서도 끝까지 최선을 다해 자기임무를 수행해 나간다는 것으로 끝난다. 이는 많은 것을 암시하는데, 그때까지의 로봇물의 유행은 보통 작품이 진행되면서 주인공이 ‘구식’ 메카에서 ‘신형’ 메카로 갈아타면서 더욱 파워업한다는 것이 보통이었지만, (물론 이는 스폰서인 장난감 메이커의 마케팅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이 작품의 주인공인 노아는 자기가 타던 잉그램 1호기에 알폰스라는 애칭을 붙여가면서 마치 자신의 분신과도 같이 아끼고 있었기 때문에 새로운 로봇의 출현에 기대감은 커녕 불안감과 거부감을 함께 느끼게 된다. 소위 리얼로봇이라는 작품들이 기본적으로는 로봇을 ‘도구’로 보는 관점에서 출발하는 것과는 달리, 이 패트레이버에서는 로봇이 어디까지나 ‘도구’라는 것을 인식하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거부하고 로봇을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특별한 존재로 여기는, 슈퍼로봇 애니메이션에서나 볼 수 있는 사고방식이 드러난다. 하지만 그것은 역시 ‘현실적’인 것은 아니어서, 주인공 노아는 결국 잉그램의 운명을 받아들이면서 자신의 손때가 묻은 자기만의 잉그램 = 알폰스와 함께 이별의 날이 올 때까지 끝까지 싸우기로 결심하면서 작품은 막을 내리는 것이다.

그 뒤에 이어진 OVA 시리즈(NEW OVA 시리즈)는 기본적으로는 TV 시리즈의 스토리가 그대로 이어지는 후일담과도 같은 것이지만, 이 작품에서 보여지는 중요한 특징은 방송 스케줄이나 제작예산에 항상 신경을 써야 하는 TV 시리즈와는 달리 보다 자유롭고, 스탭의 생각이나 느낌이 작품 속에 솔직하게 반영될 수 있는 에피소드가 많았다는 것이다. 그 중심이 되는 에피소드는 물론, TV에서는 완벽하게 결말을 짓지 못했던 그리폰과의 마지막 대결이었다. 다시 돌아온 그리폰은 TV 시리즈의 마지막에서 잉그램을 밀어내고 경찰청의 새로운 영웅으로 등장한 ‘제로’를 순식간에 파괴해버리고 잉그램과 다시 맞붙게 된다. 비록 신형이기는 했지만 잉그램과 같은 메카와 조종자 사이의 일체감이 없이 자동화와 편리함만을 추구한 제로는 성능면에서 앞서는 그리폰을 당해낼 방법이 없었지만, 메카에 대한 깊은 애정을 바탕으로 기계의 본래 성능 이상의 힘을 이끌어내는 노아와 알폰스는 그리폰에게 다시 한번 당당하게 맞선다. 그러나 절대적인 성능의 차이에 서서히 한계를 느끼고 있을 무렵, 달려온 옛 동료 카누카의 힘으로 상황은 역전되고, 결국 노아와 알폰스는 사상 최강의 적이었던 그리폰을 쓰러뜨리고 승리를 쟁취한다. 이와 동시에 노아가 소속된 제2소대의 고토 대장과 흑막 우츠미의 두뇌싸움, 그리고 우츠미의 옛 애인이었던 부대장 쿠마가미와 우츠미의 갈등, 또한 이전에는 언제나 사고뭉치였던 방송국 리포터 모모코의 대활약 등 이 에피소드는 그때까지 패트레이버가 쌓아온 모든 재미의 결정판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서 일단 TV 마지막 에피소드에서 보여준 ‘신형에 밀려 사라지는 구형’의 애수감은 완전히 날아가 버리고, 로봇 애니메이션 본래의 재미는 극대화된다. 하지만 그 이후로, 이제 ‘로봇 애니메이션’이라는 족쇄에서조차 자유로워진 패트레이버는 기상천외한 에피소드를 연발하며 스탭들의 취향과 팬들의 바람을 다양하게 충족시키면서 ‘애니메이션판 동인지’적인 색채를 강하게 드러낸다. 원래는 어디까지나 메카디자이너로서 참가한 이즈부치 유타카가 각본과 콘티를 쓴 신비적인 러브스토리 ‘눈의 론도’나 이토 카즈노리의 특촬물 팬으로서의 취향이 그대로 드러나는 ‘별에서 온 소녀’에서 절정에 다다른 이러한 취향은, 결국 전16화라는 짧지 않은 시리즈로서 막을 내리게 된다.

누구나 패트레이버 시리즈가 이젠 끝났다고 생각했을 무렵, 오시이 마모루는 자신의 색채를 보다 선명하게 드러낸 신작, 패트레이버 THE MOVIE 2로서 다시 팬들 앞에 돌아온다. 이미 대작으로서 완결된 TV 시리즈와 NEW OVA 시리즈를 완전히 무시하고 다시 예전 패트레이버 THE MOVIE의 세계관을 계승한 원래의 오시이 패트레이버로 돌아온 이 작품은, 기본적으로는 OVA 시리즈 5,6화의 쿠데타 에피소드와 애초에는 NEW OVA 시리즈의 후일담으로 만들어졌던 단편 소설 ‘THE DAY AFTER’의 설정을 참고로 하여 만들어졌는데, 이 작품에서 오시이는 이전 극장판에서 보여준 특유의 암울한 분위기를 보다 강렬하게 계승하면서 캐릭터보다는 주제의식을, 경쾌함보다는 무게감이 있는 액션을 강조하였다. 이 작품은 화려한 컴퓨터 그래픽과 함께, 평화는 당연히 주어지는 것이라는 매너리즘에 빠져있는 일본인들의 사고방식과 이를 틈탄 일본 군국주의의 부활 양쪽을 경계하고 있는 주제로 인해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지만, TV 시리즈와 NEW OVA 시리즈를 통해 구축된 팬 층에게는 캐릭터와 세계관에서 보여지는 이질감으로 인해 다소의 반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하였다.

그 후, 오랫동안 침묵상태에 빠져있던 패트레이버는 원작만화의 종결과 함께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차츰 사라져 갔지만, 패트레이버의 작품 속 시대배경인 21세기가 찾아오면서, 메인 스폰서인 반다이가 주도적인 역할을 한 P21이라 불리는 패트레이버 부활 프로젝트가 개시되었다. 신작 게임과 프라모델은 물론, 옛 작품들을 정리한 DVD 등의 발매로 다시한번 붐을 일으키려는 반다이의 시도는 비밀리에 만들어지고 있던 패트레이버 3번째의 극장판 애니메이션 <폐기물 13호>의 개봉으로 인해 거의 절정에 달했으나, 문제는 DVD를 통해 이전의 작품을 다시 접한 팬들이 <13호>에 내린 평가가 매우 좋지 못했다는 것이다. 일단 스토리 자체는 유우키 마사미의 원작만화에 등장하는 에피소드를 가지고 왔지만, 연출상으로는 원래의 주인공인 특차2과 제2소대의 활약상이 작품의 중심에서 밀려나 있고, 나머지 캐릭터들에게서도 본래의 패트레이버 캐릭터들이 가지고 있었던 강렬한 매력은 느끼기가 힘들었으며, 비주얼상으로는 확실히 발전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본적으로 오시이 패트레이버의 아류라는 오명을 벗지 못하는 등, 이 작품은 결국 잔뜩 부풀어 올라있던 팬들의 기대에 찬물을 끼얹고 말았다.

그러나 문제는 이 작품과 동시개봉한 단편 애니메이션 ‘미니패트’라는 뜻밖의 복병에 있었다. 헤드기어로 대표되는 예전 패트레이버의 주요 스탭이 거의 완전히 배제된 <13호>와는 달리, 오시이 마모루가 예전 OVA 시리즈의 감각으로 각본을 쓴 ‘미니패트’는 ‘CG로 제작한 종이 애니메이션’이라는 독특한 표현기법과, 패트레이버 NEW OVA 이후 오랫동안 접할 기회가 없었던 오시이 마모루의 환상적인 개그 센스가 결합하여 예전의 팬들 사이에서도 압도적인 지지를 얻었고, 실제로 <13호>가 거둔 흥행실적의 절반 이상은 이 ‘미니패트’의 인기덕분이라고 말해질 정도였던 것이다. 이것으로 인해 P21 프로젝트는 기대만큼은 아니었지만, 절반 이상의 성공을 거두고 막을 내리게 되었다.

서기 2003년이 되어버린 지금의 시점에서, 1999년부터 이야기가 시작되는 패트레이버는 이미 있을 수가 없는 가상의 과거 이야기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80년대에 예측한 21세기의 여러 단면을 현실로 찾아온 21세기의 모습과 비교해 보는 것은 확실히 흥미로운 일이다. 불행히도 패트레이버에 등장하는 ‘레이버’ 처럼 거대한 인간형 로봇이 걸어다니는 세상은 오지 않았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패트레이버에는 전혀 등장하지 않았던 휴대폰 문화가 판을 치고 있으며, 동서 냉전이 계속될 줄 알았던 패트레이버의 21세기와는 달리 지금의 세상은 냉전은 끝났지만 새로운 위협이 계속해서 나타나고 있는 실정이다. 어쩌면 왔을지도 모르는 또 하나의 21세기… 지겹고 짜증나고 불안하기만 한 우리의 21세기보다는 그래도 뭔가 희망이 있고, 인간적이고, 낭만이 있는 그런 21세기로 한번쯤 여행을 떠나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written by 백금기사(lgaim.egloo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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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는 모 님의 발안으로 쓰기 시작했지만, '차별화'에만 집착한 나머지 결국

너무 늦어버리고 만 비운의 원고. 하지만 제 생각에도 그저 그렇네요.

덧글

  • 영원제타 2004/04/02 19:47 #

    패트레이버는 꽤 좋아하는 작품인데, 잘봤습니다.
    패트레이버도 나름대로 사정이 복잡하군요.
  • 功名誰復論 2004/04/03 17:46 #

    전 유우키 마사미의 만화 쪽이 제일 좋았습니다. 그런데 패트레이버2는 정말... 안 좋아할 수가 없는 작품입니다.
  • 혀기 2004/04/03 22:09 #

    천사의 알은 개인적으로 싫어하는 애니입니다.
    지독한 작가주의에 빠진 애니라서 그런지 정이 안가더군요.
    그래서 한때 이 감독을 이유 없이 엄청 싫어했었죠.
  • 로리 2004/05/04 01:22 #

    패트레이버의 가장 큰 장점은 바로 그 자유로운 표현에 있는 것 같습니다. [레이버]라는 그 세계만을 공유한채 모든 것을 주요 스텝맘대로 장난을 친다는 점 말이죠..
  • rumic71 2004/05/04 10:05 #

    무엇보다도 본작의 가장 큰 특징은 <주인공>이 없다는 점입니다. 굳이 따진다면 2소대가, 노아-아스마 커플이 주인공이라고 하겠지만, 이들도 관찰자 자리로 물러날 때가 굉장히 많으니...
  • 잠본이 2004/07/24 12:56 #

    지금도 오시이 최고의 명작은 '특차 2과 전멸!'이라고 믿고 있다는...(샤프트도 지구방위군도 못한일을 상해정 아저씨가 해냈다~ 두두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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